전국이슈2013.09.08 18:30

탈핵을 외친 당신이라면, 지금 이 순간 에너지기본계획을 알아야 한다

  

이보아 (녹색당 탈핵특별위원회 위원장)


 

2차 에너지기본계획

  과연 이 이름을 알거나 들어본 사람이 대한민국을 통틀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이 계획을 통해 실제로 무엇이 결정되는지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환경운동을 하는 활동가 중에서도 그리 많지 않은 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이름 모를 계획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특히 당신이 탈핵을 외쳐 왔다면!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은 바로 그 탈핵의 로드맵 또는 탈핵과 반대로 가는 로드맵을 담는 계획일테니 말이다. 총선과 대선이 몰려있던 정치의 해 2012년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탈핵 시나리오와 공약들이 그저 얇은 실 한 오라기만큼의 신뢰도를 가진 정치인들의 약속이었다면, 올해 12월 수립될 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실제로 탈핵의 길을 밟게 되느냐 마느냐 규정력을 가지는 계획이다. 2035년까지 20년 이상의 장기적인 에너지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5년마다 수립하는, 에너지 분야의 최상위 계획, 그래서 한 번 수립되면 되돌리기 너무 어려운 계획. 바로 이 에너지기본계획에서 핵발전 비중이 결정된다. 노후 핵발전소를 폐쇄할 것인지 말 것인지, 신규 핵발전소를 더 지을 것인지 말 것인지, 그래서 밀양청도에 고통을 안겨 준 초고압 송전선로가 계속 추진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이 계획에 주목해야 하고, 이 계획을 운동의 타깃으로 잡아야 한다.

 

시민들이 학습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논의 과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정부에 따르면 지금 이 논의는 정부학계산업계 그리고 일부 NGO 전문가만이 참여한 워킹그룹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내용은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이 논의의 결과는 아마도 빠르면 9월 말 또는 국정감사가 끝나고 10월 중순 이후에나 공개되어, 아마도 짧고 형식적인국민의견 수렴 기간을 거치고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에너지위원회녹색성장위원회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연말에 최종 확정될 것이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국민의 결정에 따른 계획이 아니다.

우선 순서가 틀렸다. 향후 20년 간 에너지정책의 원칙과 방향은 몇몇 전문가들이 아닌 국민들이 결정해야 맞다. 사회적 공론화와 그에 따른 합의가 먼저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은 첫째, 사회적 합의를 위해 국민이 던지는 질문에 구체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결정을 돕는 일이다. 둘째, 이렇게 결정된 큰 방향에 맞추어 세부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 수십 년을 그래왔듯이 말이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이미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에너지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있고, 에너지 정책이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제 여기에 충분한 학습과 토론의 시간만 추가하면 된다. 그게 숙의 민주주의다. 워킹그룹에 속해 있는 전문가들도 모든 분야의 전문은 아니다. 듣기로는 전문가라는 그들도 새로운 정보를 숙지하고 수차례의 질의응답과 학습, 토론을 통해 방향을 조금씩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왜 이 과정을 전문가들만이 밟아야 하는가. 그냥 국민이 을 마련하는 과정부터 참여하면 된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똑같이 누릴 권리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현재 과정에 대한 공개부터 요구해야 한다.

 

 

 

 

 

정부보다 쉽게, 넓게 만나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시민을 만나야 한다. 2차 에기본이 반드시 담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달라진 상식, 달라진 컨센서스다. 밀양과 청도의 할매들이 송전탑 투쟁에서 매일같이 전해주는 생생한 교훈이다. 시민을 만나 이 점을 환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지식을 우리는 상당히 가지고 있다. 정부가 에너지기본계획의 논의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학습과 토론의 장은 우리가 만들면 된다.

 

우선 20113월의 사고에 이어 최근에는 심각한 방사능 오염수의 유출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는 후쿠시마가 우리 눈앞에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오늘도 내 밥상 위에 오를지 모를 일본산 방사능 수산물은, 이제 일상의 불안이다. 핵마피아라는 말이 낯설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자고 나면 불어나는 원전비리를 목도하고 있다. 그렇게 비리로 납품된 허술한 부품 때문에 몇 번이고 핵발전소가 멈춰 놀란 가슴도 쓸어내렸다. 뿐만 인가. 일을 저지른 건 핵마피아인데, 그 때문에 절전을 한 건 나머지 다수의 시민이었다. 이미 시민은 화가 나 있다.

탈핵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더 알게 된 것도 있다. 땅 끝 핵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 저 멀리 대도시의 공장과 가정에서 쓰는 잘못된 공급 시스템 때문에, 전기 없이도 사는 밀양과 청도의 할매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뿐인가. 세계 최저가 산업계 전기요금 때문에 철을 녹일 때도 전기를 쓰는 이 잘못된 시스템이 저 위험천만하고 부정의(不正義)한 핵발전소를 더 짓게 만든다는 것도 알게 됐다.

탈핵을 이야기하는데 얼마나 더 많은 근거가 필요한가. 얼마나 더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가. 이렇게나 풍부하고 일상에 침투해 있는 탈핵 이슈를 가지고 이제 시민을 만나면 된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무엇이 결정되는지, 무엇이 결정되어야 하는지를, 시민들이 아는 사안으로, 아는 이야기로 재해석해 들려주어야 한다.

 

정부가 짜 놓은 일정, 쥐어주는 권한에서 자유로워지면 의제도 확장할 수 있다. 지금 사용후핵연료의 공론화나 한미원자력협정은 2차 에너지기본계획과 완전히 동떨어져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전의 낡은 틀에 갇혀 만들어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의제는, 핵폐기물을 만들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하도록 완전히 새로 설계해야 한다. 한미원자력협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목매고 있는 핵연료의 재처리는 장기적으로 핵발전소를 폐쇄한다면 명분 자체가 사라진다.

 

정부보다 빨리 그리고 시끄럽게 만나야 한다.

 

그리고 빨리 움직여야 한다. 워킹그룹의 초안이 나온 후에는 한참 늦다. 우리가 나서야 할 것은 바로 당장의 9월부터다. 모든 정보와 논의 과정의 공개를 요구하고, 노후 핵발전소의 폐쇄가, 건설 중인 핵발전소가, 계획 중인 핵발전소가, 밀양의 송전탑이 지금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를 따져묻기 시작해야 한다. 또한 분명한 것은 우리의 움직임이 결코 조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떠들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시끄럽게 떠들어야 한다. 탈핵을 외치는 집회는 후쿠시마 사고 몇 주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이 탈핵 집회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3년 하반기, 우리는 탈핵 대통령을 외치던 그 열정을 가지고 정부보다 빨리, 쉽게, 넓게, 그리고 시끄럽게 시민을 만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탈핵은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발행일 : 2013.9.6

Posted by 비회원